고통의착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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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혼이 나간것 처럼 보였다.
우측 얼굴에 광범위한 대상 포진이 생긴뒤
그 어떤 치료도
효과가 없었고
수주일간 극한의 고통속에서
잠을 못자고
여기서 회복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절규속에서
정신적 붕괴라는 종착역에
거의 다 도착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 절망의 역을 잘 알고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역에 놓여있는 의자의 숫자부터
승강장의 색깔,
눅눅하고 습한 그 냄새,
기괴하고 알수없는 소리들까지
그곳을 그려보라고 해도
아주 쉽게 당장 그려줄수 있을 정도로
그곳은 춥고 어둡고
외로운 곳이다.
남자도 그 역에서
씩씩하신 아내의 손을 잡고
나를 만난 것이다.
상황은 좋지 않았다.
환자의 우측 안면부 신경은
생물학적 공격과
과도한 면역 반응으로
신경이 손상된 상태에서
마약과 화학적 약물 그리고
정확하지 않은 주사 치료의 범벅에 뒤덮힌채
마치 끊어진 고압 전선이
미친듯이 요동치면서
스파크를 일으키며
통증을 폭주 시키고 있었다.
이쯤되면 환자에게 대상 포진이라는 존재가
단순한 피부 질환이 아니라
마치 지옥에서 온 고통의 착즙기가
얼굴에 붙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통증을 쥐어짜내는 공포의 존재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절망의 눈속에
낫고자 하는 간절함이 남아있었다.
그 간절함은 자칫 초기 치료 과정의
험난함을 견디지 못하면
완전한 포기로 이어질수 있는
연약함을 부비트랩처럼 날카롭게 숨기고 있지만
어쨌던 나는 여기서 환자를 데리고
나와야 한다.
그게 나의 업이고 사명이다.
치료 중간중간 환자가 고통으로
나를 의심하고
치료를 의심하고
완치를 의심했지만
역시 보호자이자 지혜로운
아내분은 흔들리지 않으셨고
환자를 끝까지 붙잡고
나를 응원해줬다.
결국 최선의 긴 치료끝에
환자가 그 어둠속에서 걸어나와
우리와 함께 고통 없는
이 평범한 세상을 같이 웃으며 봤을때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절망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치 동화속 마지막 구절처럼
왕자처럼 잘 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왕비가
행복하게 살게 되듯이
난생 처음 보는
아름다운 미소를
나에게 보여주시면서
그렇게 두 분은 떠나셨다.
환자분의 씩씩하시고 아름다우신 부인과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