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칼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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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통증으로
춘천에서 내원하신
60대 후반의 남자 환자분
진료실에 들어 오시자마자
깍뜻한 인사를 하시는 모습이
문득 흑백 사진이 가득한
사진첩을 보듯 그 옛날
고열에 시달리는 어린 나를
치료해주신 의사 선생님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시던
아버지의 인사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가져오신 MRI에서
어깨 힘줄은 파열되어 있었고
힘줄 파열에 의한 동결견으로
가동 범위의 제약이 심한 상태셨다.
"아버님, 이 정도면 병원에서 수술 하시자고
했을것 같은데요? "
환자분은 가는 곳마다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가까운 이가 수술을 받고도
1년 가까이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을 보시고
당신께서 지금 벌려놓은 일이 있어
가능하면 수술을 해도
나중에 받고 현재 통증때문에
일도 못하시고
밤에 잠에서 자꾸 깨어
일상이 불편함이라도 덜어보고자
지인의 소개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며
나름 절박한 사정을 피력하셨다.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은 꼭 오셔서
치료 받으셨야 합니다.
장담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 해볼테니
아버님도 노력해주세요"
MRI 상에서 힘줄도 찢어져 있고
연골이나 주변 조직도 지져분했지만
회전근개 근육의 위축이 심하지 않아
나름 승부를 볼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약속대로 아버님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차를 몇 번을 갈아타서라도
꼭 와서 치료를 받으셨고
오실때 마다 보여주시는
그 낯설지 않은 인사속에
알수없는 애틋함을 더해
나도 열심히 치료하고
뭔가 더 해드리려고 노력했다.
수 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아버님의 야간 통증은
거의 사라졌고
3개월을 넘기지 않고
어깨의 가동 범위도 통증 없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셨다.
"원장님...이제 많이 나아졌는데
오늘까지만 와도 될까요?
물론 더 오라고 하시면 더 오겠습니다."
통증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어깨 관절을 확인하고
조심스러운 얼굴로 물어보시는 환자분에게
이제 그만 오셔도 될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내 말을 듣고 환자분은
이것은 당신이 직접 만든 선물이라며
아까부터 만지작 거리시던
기다란 통을 내 팔에 강제로
맡기다시피 안겨놓고
감사합니다 원장님!
큰 소리로 인사하신후
총총히 떠나가셨다.
여러가지 선물을 받아 보았지만
이렇게 기다란 통을 선물로 받기는
처음이었다.
선물을 열어보고 다들 놀랐다.
선물을 꺼내면서
마치 내가 영화 주인공이 된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선물이었다.
그 이후 한밤중에 진료실에서
혼자 있을때 문득 한번씩
그 선물을 스르릉 꺼내어
천천히 들어올려 볼때가 있다.
나만의 엑스칼리버
흑백 사진처럼 나타나서
어깨를 고친후
마법사처럼 나에게 선물해준
그 엑스칼리버를 들어볼때가 있다.